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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레비나스, 타자의 윤리학

문득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시간과 타자(Le Temps et l'Autre)"를 펼쳐보았다.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주체란 곧 책임이다. 책임은 '너'의 얼굴에서 나오며, 무한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제한적이기도 하다. 그가 사용하는 책임이라는 개념은 기발하고,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 Exupery)의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에서 나오는 '꽃에 대한 책임'은 책임에 대해 말할 때 즐겨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은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의 책임은 길들임에 대한 책임이다. 생텍쥐페리는 길들임이 곧 관계맺음이며, 여기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즉 이 책임은 이미 관계맺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은 모든 타자를 향해있다. 적절하지는 않지만 설명의 이해를 돕고자 말한다면, 타자의 있음 그 자체로 이미 책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은 그가 말하는 책임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얼굴의 첫 마디는 '당신은 살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명령이다. ... 그러나 동시에 얼굴은 헐벗었다. ...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든 '제일인자'로서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는 존재다.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Ethique et infini)", 양명수 역, 다산글방, p. 114)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책임은 거의 칸트(Immanuel Kant)의 정언명령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유토피아적이다. 책임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선행하며, 무조건적이어야만 한다. 그가 펼쳐내는 윤리학은 다소 종교적이고 불가능해보이지만, 충분히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타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는 것, 다양성이 자기변호의 상용어로 전락한 시대에서 레비나스가 선보이는 타자의 윤리학은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