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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잠수종과 나비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2008)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한 남자.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는 세계적인 패션전문지 '엘르(Elle)'의 편집장이었던 '쟝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은 이 영화를 주인공의 시선으로 찍기 위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흐릿한 시선, 눈꺼풀의 깜빡거림, 그리고 어둠 등은 쟝 도미니크가 가졌을 심정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해준다.


Gagosian Gallery Opening Reception For Julian Schnabel


원래는 화가였던 줄리앙 슈나벨은 화면구성에 있어 여지없는 실력을 보여준다. 작년에 한국에서, 올해는 중국에서 전시 중인 그의 미술작품들을 보면 그의 영화와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1984년작 "Piston"은 흐릿하고 흔들린 시선을 담아낸 벨벳판화작품이며, 1995년작 "La blusa rosa"와 1998년작 "Jose luis Ferrer" 등의 실크스크린 작품은 그의 영화포스터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원색적 콜라쥬를 떠올리게 한다.
Cannes -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Photocall


줄리앙 슈나벨은 <잠수종과 나비>를 통해 병으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한 남자가 다시금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비록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쟝 도미니크(마티유 아말릭; Mathieu Amalric)의 인생은 많은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들려주는 끊임없는 모놀로그. 그의 언어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감동으로 가득하다.


바다 속을 날아다니는 나비. 쟝 도미니크는 비록 신체의 구속 안에 갖혀있지만, 상상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영화 전체를 함축하는 제목, 감성이 넘치는 영상, 욕심내지 않는 편집, 잠깐씩 까메오로 나오는 프랑스의 쟁쟁한 여배우들의 모습 등, 이렇다할 스펙타클은 없지만, 소소한 볼거리와 철학을 넘치도록 잘 표현해낸 작품이다.